[공학저널 김하늬 기자] 최근 전 세계적인 이슈로 떠오른 기후변화와 이를 유발하는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한 국제적인 압력이 현실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21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에너지를 8번째로 많이 쓰는 에너지 다소비국이다. OECD 선진 각국의 연평균 에너지소비량이 평균 0.2% 감소하는 동안 우리나라는 0.9%씩 증가하는 추세로 나타났다.
이러한 증가세를 주도하고 있는 분야는 국내 에너지 소비의 약 62%를 차지하는 산업부문이며, 그중 약 80%가량 철강, 석유화학, 정유 산업 등에서 소비가 일어나고 있다.
이와 같은 산업에는 연소기나 공업로, 보일러, 건조기 등의 설비가 공통적으로 다수 사용된다. 이러한 열에너지 다소비 산업설비를 대상으로 고효율 기술을 개발 보급하고, 설비 규모에서 에너지 사용량을 줄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탄소중립의 핵심요소로 손꼽히고 있다.
이에 기술적인 비효율성을 제외하고, 화석연료의 연소에 의존했던 공급방식을 무탄소 연료나 재생에너지 전기로 전환하는 노력이 필요하며, 이러한 변화는 향후 10여 년 내에 자발적 혹은 강제적으로 이루어질 개연성이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하지만 열에너지 다소비 산업설비를 제작·운영하는 기업의 측면에서 볼 때 다소 열악한 현장 여건과 중소·중견기업이 대부분인 국내 상황으로 인해 전문인력 수급이 어려워 새로운 기술을 도입·습득하고 응용하는 데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국내 중소·중견기업들을 대상으로 최근 국내 산업 분야에 고효율 기술을 개발 보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개발 중인 ‘열에너지 다소비 산업설비 스마트설계(STED·Smart Thermal Energy Design) 플랫폼’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의 지원을 받아 2020년에 시작된 ‘열에너지 다소비 산업설비 스마트설계 플랫폼 기술 개발 및 실증’ 과제는 주관기관인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을 포함해 총 21개 산학연이 참여하는 대형 사업이다.
현재 과제를 통해 개발된 STED 플랫폼에서는 Level 1과 2의 두 단계로 나눠진 설계 툴을 제공한다.
열에너지 산업설비에 사용되는 모든 기기 또는 설비들은 단독으로 사용되지 않는다. 설비와 인접한 공정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운전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장치를 도입했다 하더라도 그 조건이 맞지 않으면 본연의 성능을 발휘하기 어렵다.
이러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STED 플랫폼에서는 Level 1의 설계 툴을 제공한다. 기업에서 개선하고자 하는 공정 또는 설비 전체를 그림 그리듯 드래그 앤 드롭 방식으로 그려서 사용자가 원하는 조건을 입력하기만 하면 열과 물질 흐름의 균형을 플랫폼이 계산해 그 결과를 제공한다. 이후 사용자는 그 결과를 통해 Level 2 설계 단계에 진입할 수 있다.
Level 2 설계는 개별 기기 또는 설비의 설계를 수행하는 단계로서 사용자가 원하는 치수나 조업 조건 등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사양을 입력할 수 있다. 플랫폼에 내장된 알고리즘에 따라 각각의 기본적인 설계 도면을 제공하거나 상용 제품을 추천하게 된다.
특히 STED 플랫폼에서는 기술 수요자의 요구에 따라 신기술을 플랫폼에 탑재한 전문가가 기술 실시를 지원할 수 있도록 온·오프라인 (O2O, Online to offline)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어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에너지융합시스템연구단 이대근 책임연구원(사진)은 “현재 과제는 최종 목표인 외부 공개용 시험판 베타버전 개발에 앞서 알파 플러스 버전 개발까지 완료한 상태이고, 플랫폼 안에 담기는 물리 기반 설계 모듈 40건과 AI 기반 설계 모듈 3건을 완료했다”라며 “다만 사용자 친화성 부분에 있어 부족한 부분이 발견됨에 따라 이 부분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해부터 플랫폼의 신뢰도를 검증·향상시키기 위한 현장 실증을 진행 중이다. 총 6건의 실증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차전지 양극재 소결로, 철강 공정 가열로, 산업용 보일러, 섬유 건조공정, 압축식 및 흡수식 히트펌프 등 활용처 별로 다양한 실증이 진행됨에 따라 올해 각각의 운전 결과를 플랫폼에 피드백할 예정이다.
한편, 정부에서는 ‘시장원리 기반 에너지 수요 효율화 종합대책(2022)’을 발표한 바 있다. 그 첫 번째 전략이 바로 ‘에너지 다소비 산업 현장 효율 혁신 본격화’다.
기업의 자발적 참여를 통해 효율 혁신이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지만, 열에너지 다소비 산업 관련 기업의 여건을 현장에서 살펴볼 때 평가와 인증 및 사후 지원을 통한 보상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이 책임연구원의 생각이다.
국내 중소·중견기업은 재정적인 어려움뿐만 아니라 전문인력 또한 부족한 현실로 자발적인 참여가 어려운 실정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이러한 현실을 타개하는 데 필요한 것이 선제적 지원과 고효율 기술 보급사업이다. 국가가 인증한 기술을 기업이 자발적으로 도입해 산업 현장에 깔린 무수히 많은 노후화된 설비들이 고효율 신기술을 탑재한 설비들로 대체되기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선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ETDP 사업과 같은 산업부문의 시범적용사업이 확대 시행돼야 하며, 그 과정에서 STED 플랫폼이 유용한 도구로써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연구팀은 올해 완료되는 과제 현장 실증에 집중할 계획이다. 이론적 또는 수치상으로만 이루어지는 플랫폼 내 설계가 허수가 되지 않도록 현장 실증의 과정 및 결과를 꼼꼼히 검토해, 플랫폼 사용자의 기술적 전문성에 크게 의존하지 않는 신뢰도 높은 기술을 제공할 수 있도록 STED 플랫폼의 완성도를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 책임연구원은 “올해 개발이 마무리되고 나면 온라인을 통해 STED 플랫폼이 외부에 공개될 예정이며, 플랫폼 개발에 따른 성과는 그 이후에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며 “플랫폼을 통한 기술 서비스 시장이 국내에 정착하게 된다면 단위 기술이 산업 전 분야에 급속히 확산될 수 있는 고속도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고 이를 통해 국내 주력산업의 에너지원 단위의 절감과 이를 통한 온실가스 배출 저감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효율 향상 기술은 에너지와 관련한 기술, 산업, 정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효율 향상을 통한 에너지 수요가 적절히 관리·제어되지 않는다면 경제 성장에 따라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 공급량은 필연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산업 현장의 체질 개선을 통한 고부가가치화로 대·중·소기업이 동반 성장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사회 경제적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