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저널 전찬민 기자] 우리나라 역사를 기본적으로 아는 국민이라면 고산자 김정호 선생의 이야기는 알고 있을 것이다. 대동여지도를 통해 국토 정보를 정확하고 편리하게 만들어서 제공하겠다고 노력했던 김정호 선생의 정신은 오늘날 디지털트윈, 스마트시티, 스마트 건설 등으로 대변되는 제4차 산업혁명의 지향점과 닿아있다.
일제강점기 이후 이어지는 미군정, 한국전쟁의 기간 동안에도 지형정보는 제작됐지만, 우리의 기술이 아닌 외부의 필요성에 의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것이었고, 우리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1960년대 네덜란드의 후진국 지원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시작된 한화협동 사업은 우리나라 지도 제작의 전환기를 맞이하게 됐으며, 드디어 지도제작, 나아가 측량 및 지형공간정보 분야의 발전을 위한 본격적인 출발점이 된 계기가 됐다.
이후 열사의 나라 중동에서 지도제작을 위한 기술을 제공하고, 서울 이현동 가스폭발사고, 대구지하철 공사장 폭발사고 등 비극적인 사건을 거치며 국토의 정보에 대한 필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더 다양한 정보를 더 신속하고 더 정확하게 구축하기 위한 산·학·연·관의 노력은 우리나라를 측량 및 지형공간정보 강국으로 이끌었던 기반을 마련하게 됐다.
이로 인해 지상에서 진행되던 측량은 비행기를 타고 사진을 찍어 처리하는 기술로 발전됐고, 인공위성 영상을 이용하고, 디지털센서의 기술을 도입하고, 또한 무인드론의 도움을 받는 시대적 흐름을 적극 수용하면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종이에 인쇄하는 것만이 유일한 보급 방법이었던 국토의 정보는 CAD 기술과 결합하고, 데이터베이스와 융합되고, 3차원 모델링 기법이 적용되고, 이제는 센서를 통해 지형의 모습을 그대로 3차원 스캐닝하는 말 그대로 디지털트윈의 시대를 열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 정부는 공간정보 주관기관인 국토교통부 국토지리정보원을 중심으로 국토 정보 제공과 활용의 측면에서 그동안 표준화 작업을 수행하고 국제표준에 부합하는 제작과정 도입 등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이를 통해 국토기본도 정보, 3차원 정보, 지하시설물, 영상지도 등 다양한 컨텐츠를 구축하고 제공하고 있으며, 이러한 정보의 수평, 수직 기준이 되는 각종 측량 기준점을 설치하고 유지 관리하는 등의 분야에 많은 노력과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도로, 철도, 교량, 터널 등과 같이 유형적 존재와 가시적 효과를 보이는 전통의 SOC와는 다르게, 국토의 정보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유형적 존재감이 부족하고 가시적인 경제 효과 등을 산정하기에는 어려움이 뒤따르고 있다. 1990년대 초반 가스 폭발사고 발생 이후 지하시설물도가 없다는 것이 알려지고, 산사태가 발생한 뒤에 관련 지형정보가 활용돼야 한다고 제기되고, 도시 지하 거주 시설 침수로 인명피해가 발생하고 난 다음에야 도시의 3차원 공간정보의 필요성이 대두됐다는 점은 안타까운 현실이기도 하다.
지난해 7월 충청북도 오송 지역의 한 지하차도에서 호우로 불어난 강물이 월류해 지나가던 국민 14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비극적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여기에는 기본 계획과 BIM 자료가 있었을 것이며, 주위의 제방에 대한 정보와 하천의 정보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곳에서 허점과 어느 한 자료의 부실이 있었을 것이고, 정밀도도 달랐으며, 정보를 구축한 시기, 즉 최신성도 달랐던 것이 원인으로 예측된 상황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수치지도와 수치표고모형이 제작돼 있는데, 수치지도는 아직도 2차원 기반이고, 수치표고모형은 도심지에서는 1미터 간격이지만, 도심 외곽 지역에서는 5미터 간격이다. 하지만 디지털트윈, 스마트시티, 스마트 건설 등 4차 산업혁명의 기반이 되는 측량 및 지형공간정보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
국토에 대한 정보는 지금 필요하다고 당장 다음 달까지 만들어 낼 수 있는 정보가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은 예산이 투입돼야 하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이를 위한 기술과 인력이 있어야 하며, 이를 제공할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할 필요도 있다.
한국측량학회 김원대 회장(사진)은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정부 및 관련 기관은 오송 지하차도 사고 이후 구체적인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해야 함에도 현재까지 이렇다 할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며 “대통령 국정과제에 ‘국토공간의 효율적 성장전략 지원’을 위해 ‘고정밀 전자지도, 3차원 입체지도 구축 등을 통해 디지털트윈을 조기 완성해 교통, 환경, 방재 등 도시문제 해결에 활용’이라는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이번 정부의 임기가 2년을 향해가는 이 시점에서 과연 실행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3차원 공간정보를 구축하기 위해 시도된 예산 확보는 현재까지 요원한 상태고, 지난해 7월 짚불처럼 일었던 관심은 이내 사그라들었다”라며 “올해도 대부분 지도는 이전과 같이 만들어질 전망으로, 정보의 융합 분석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지만 분명한 것은 3차원 공간정보는 절실히 필요하고, 이를 제작하기 위한 기술은 충분하며, 인력도 갖추고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화려한 개막과 함께 지형과 공간에 관련 정보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그 중요성은 날로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측량 및 지형공간정보 관련 국가의 정책이 발전하고, 정부의 각 부처와 지방차치단체에서도 지형과 공간에 관련된 정보를 정확하게 구축하고 활용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그 규모는 날로 증대되고 있다.
민간 부분에 있어서도 교통, 물류 등 고전적인 활용 분야와 함께 모빌리티 서비스 분야에서도 그 쓰임새는 날로 증대되고 있다.
그 과정 속에 측량학회는 측량의 기준, 측량 및 지형공간정보 관련 법령, 측량기술자 자격, 지형공간정보 표준, 지형정보 취득 기술 등 각 분야에 있어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다. 이제는 디지털트윈, 스마트시티, 스마트건설 등 불과 얼마 전까지 생소하던 제4차 산업혁명의 물결에 연이어 제5의 물결이 오고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김 회장은 “제23대 한국측량학회장 임기 2년 동안 측량 및 지형공간정보의 보이지 않는 가치와 역할을 알리며, 같이 발맞춰 나갈 수 있도록, 비록 비포장의 거친 길이라도 열어 놓는 사명감을 가지고 학회를 이끌어 나갈 계획”이라며 “국민의 관심과 참여가 우리나라를 더욱 안전하고 편안하며, 살만한 나라로 만드는 것임을 알아주시길 부탁드린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