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도 칼럼] 영재교육이 올바른 나라를 만든다
[정이도 칼럼] 영재교육이 올바른 나라를 만든다
  • 공학저널
  • 승인 2020.08.26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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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으로 피폐해진 우리나라는 전 세계적으로도 최빈국이었다. 1960년이 되어도 아프리카보다도 못 사는 나라였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조차도 당시 부모 세대는 의식주 해결보다 더욱 간절히 해결하기를 원했던 것이 있었다. 바로 ‘배움’이다.

못 먹으면 굶으면 그만이었다. 못 입으면 옷이 해질 때까지 바느질로 몇 번이고 기워 입으면 그만이었다. 못 살면 나무판자로라도 집을 지어 최소한의 안전만이라도 보장하고 살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배우지 못한 것을 쉽게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배움이 없다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개인이 배우지 못해 성장하지 못하면 국가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배우지 못하면 여러 상황, 변수에 대해서 보는 시각이 떨어지기에 올바른 선택을 하기 어렵다. 경험이 이것을 보완할 수 있지만, 당시에 남은 지식층은 다수의 국민이 아니라 소수의 친일파였다.

미국으로서는 우리나라가 독립되고 한국전쟁이 끝난 후에 원활하게 나라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경험과 지식이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소수가 살아남은 독립군 지식인 대신 다수의 친일파 지식인들을 살려 그들에게 나라의 운영을 맡겼다. 그때부터 친일파의 만행은 또 시작되었다.

당시의 친일파는 비정상적으로 부를 쌓아 올렸으며 국민을 쥐어짜 만든 이익을 모두 개인의 이익으로 만들었다. 그것은 나비효과가 되어 지금의 부동산까지도 악영향을 미친다. 국민조차도 부동산에 대해 비정상적인 시각을 가지게 했다.

일제강점기가 7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들이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하다. 그래서 지금의 부동산을 안정시킬 방법의 하나는 친일파를 늦게나마 숙청하고 친일 자본은 회수하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어느 정부에서든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그래야만 국민이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고 국민을 밑으로 보는 친일파의 잘못된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지역갈등, 남녀갈등, 부의 갈등 이 모든 것은 친일파와 친일 자본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이미 기득권인 친일파와 그 자본은 국민을 선동하여 그들만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으며 국민이 더 똑똑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다양한 갈등을 만들어 내는 등의 방법으로 철저하게 대응했다. 그런 환경 때문에 국민은 무의식적으로 배움에 더 큰 갈증을 느꼈을 것이다. 지식과 정보에 무기력한 자신들의 처량함을 자식에게는 남기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을 것이다.

하지만 몰랐다. 어떻게 해야 자식들이 똑똑해지고 잘 먹고 잘살 수 있는지. 당시의 국민은 잘 먹고 잘사는 방법을 몰랐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법도 몰랐다. 그저 힘들게 소 팔고 집 팔아서 대학에만 보내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다.

역시 몰랐다. 그것이 한계가 있다는 것을.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가 힘들게 돈 벌어 자식들을 대학에 보내기 위해 억척스럽게 사는 동안 친일파는 자식들에게 기본적인 교육은 물론 창의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국·영·수를 가르치는 대신 부의 축적에 대해 가르쳤다.

시작부터 달랐다. 자본이 있는 그들과 자본이 없는 국민은. 이제는 다수의 국민이 교육을 받고 지식을 습득해 많이 성장했지만 몇 십 년의 격차는 상상 이상이었다. 어떤 방법으로도 그 격차는 절대 잡을 수 없다. 그래도 그들의 수준에 가까이 갈 방법은 있다. 창의력이다.

누군가 친일파를 숙청하지 않는 이상 그 테두리 안에서 소박하게 우리만의 부와 행복을 축적하는 방법은 창의력밖에 없다. 그리고 우리가 창의력을 가질 방법은 친일파의 교육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아니꼽지만 그들의 교육방식을 따라야 한다.

친일파는 어떻게 아이들의 창의력을 키울 수 있었을까?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영재교육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 영재라고 하면 특별하게 태어나는 소수로 알고 있겠지만 우리의 대부분은 영재로 태어난다. 하지만 그 영재성이 나타나기도 전에 부모와 주변 환경에 의해서 사라질 뿐이다.

대신에 영재로 아이가 성장하게 되면 누구나가 부러워하는 삶을 살게 된다. 사람들이 현실에 타협하고 새로움을 찾지 못하며 살고 있을 때 그들은 그들의 삶 안에서 혹은 그것을 벗어나 어떻게든 새로운 상상을 하고 꿈을 만들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부도 따라온다.

그들의 인생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누구나가 부러워할 만큼 사랑스러운 삶이다. 그리고 이 중에는 엔지니어도 포함이 된다. 엔지니어의 대부분은 신기하게도 행복하기 위해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를 원한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상상력과 창의력이 필요하다. 그것들을 가진 많은 엔지니어 덕분에 공학 기술도 발전했다.

영재가 되지 못했다고 잘못된 삶은 아니지만 누구나가 영재가 될 수 있음에도 영재가 되지 못하게 만드는 환경이 아쉽다. 우리는 부모가 된다고 부모가 되는 교육은 따로 받지 않는 대신에 그들의 부모로부터 배우거나 책과 인터넷 등을 통해 배운다. 이때 영재교육 방법도 자연스럽게 대물림이 되는데 부의 대물림이 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영재교육은 사실 어렵다. 영재의 기본 개념부터 바뀌어야 하고 부모가 아이를 대하는 방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왜 굳이 잘 키우고 있는 우리 아이들을 영재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일까?

대부분의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영재인데 단지 사회성을 잘 못 배우게 되면서 영재성이 사라지게 된다. 영재로 태어난 우리 아이를 영재가 되지 못하게 부모가 모르는 사이에 막았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일까? 몰랐겠지만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영재였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교육 환경이 지금처럼 만들어진 것이 불과 몇 십 년이 안 된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발전한 것도 국민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성실함을 포함한 훌륭한 국민성에 조금의 영재성이 더해져 가능했다.

조금의 영재성을 발현한 것만으로도 이렇게 발전했는데 많은 이들이 원래 가지고 있던 영재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꾸준하게 발전시킨다면 앞으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은 어마어마할 것이다. 출산율이 최저로 치닫고 있는 이때 앞으로의 아이들이 그 영재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온전히 성장한다면 적은 인구라는 위험을 극복하고 우리나라는 계속 발전할 수 있다.

앞서, 사회성을 배우면 영재성이 사라진다고 짧게 언급했고 그 내용을 시작으로 관련 내용을 다룰 예정이다. 물론 내용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영재에 대한 개념과는 매우 다를 것이고 영재교육이라고 일컫지만, 사실은 좋은 부모가 되는 교육 정도가 더 알맞기도 하다.

그리고 이것은 코로나19 때문에 재택근무가 늘어나고 있고 아이들과 접촉 빈도가 높아질수록 반드시 알아야 하는 내용이다. 부모와 잦은 접촉이 있을 때 부모의 올바른 대응은 아이의 창의성이 잃어버리지 않게 도움을 준다.

아이의 창의성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는 가정이 늘어날수록 미래 국가 경쟁력에도 큰 역할을 한다. 엔지니어의 성장도 예외가 아니다. 유대인은 나치 등의 핍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전 세계적으로 흩어졌지만, 다행히 그들의 국민성과 지성으로 각 나라에서 두각을 보였다.

이 모델은 앞으로 우리나라에서도 나타나야 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의 참혹함을 뛰어넘은 다음 세대들이 전 세계적으로 영역을 넓혀 우리의 우수함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계기는 곧 올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영재교육이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글_정이도
(주)드림기획 대표이사
공학전문기자/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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