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이도 칼럼] 급한 한국인과 급하지 않은 대한민국
[정이도 칼럼] 급한 한국인과 급하지 않은 대한민국
  • 공학저널
  • 승인 2020.07.13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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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특징 중 대표적인 것은 ‘빨리빨리’이다. 급격한 경제발전에도 이런 특징이 반영되었다. 하지만 ‘빨리빨리’가 좋은 성과로 나타나기 위해서는 그것을 실행하는 이들의 능력이 뛰어나야만 가능하다. 건설현장과 공장, 산업현장에서 작업 기간을 단축하라는 불가능한 지시를 받아도 직원들은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하여 시간을 단축했고 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기술력은 기업의 경쟁력이 되었다.

이것은 분야를 따지지 않는다. 프로그래머들의 야근과 주말 작업 등의 중노동으로 기업들이 성장하는 IT 현장부터 단순 반복 작업을 하는 제조업의 생산 현장까지 어디나 마찬가지이다.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진단키트의 수요량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자 기업들은 이를 맞추기위해 획기적으로 생산 속도를 높여 공급량을 수요량에 맞췄다.

이런 배경은 상명하복의 문화에서 발생했다고 유추할 수 있는데 군대에서 파생되어 영향을 끼쳤다고 예상한다.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 대부분은 군대에 갔다 와서 취직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군대에서 상관의 명령에 절대복종을 배웠고 명령을 어기면 그 크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상황에 따라 사살 대상이 된다는 것도 알았다.

군대에서의 명령은 절대적이기에 갓 입대한 신병들은 선임들의 부당한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부당한 상황은 반복되지만, 시간이 지나 제대날짜에 가까워지면 내무반 안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이란 것을 맛보게 된다. 이를 통해 ‘힘든 것을 참고 견디면 반드시 달콤함을 얻게 된다’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군대에서 자신을 희생하여 인고의 시간을 견디면 절대권력이라는 보상이 반드시 온다는 가치관이 정립되면서 국민성으로도 나타났을 것이다. 군대에서 하위층의 삶과 상류층의 삶을 동시에 경험했고 하위층의 삶에서는 불가능에 도전하면서 인간이 못 하는 것은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가족과 자유의 소중함. 부당함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 계급 앞에 평등, 시간을 견디는 인내심. 악질 선임을 그래도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되고 그것들은 군대에 있는 시간 동안 국민의 가치관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여성이 빠졌다고 반박하지 말자. 모든 가족 구성원에는 반드시 군대를 갔다 온 남자들이 포함될 것이고 그들은 가족의 가치관에도 영향을 끼친다.

제대한 이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시간을 보상받기 위해서라도 빨리 성장해야 했다. 잃어버린 시간으로 빨리 많은 것을 습득해야 했고 빨리 돈을 벌어 집도 마련하고 차도 마련해야 했다.

빠르다는 것은 남들보다는 더 앞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이 되는데 스스로 성장 속도가 빠르다고 생각했어도 남들과 같은 속도라면 빠른 것이 아니게 된다. 이런 강박관념이 우리나라를 경쟁사회로 만들게 되었고 그것은 교육열로 이어져 우리 아이들은 지독한 경쟁사회에서 살아가게 되었다. 오죽하면 어린아이들이 부모의 집과 차에 대해 비교하며 경쟁할까?

이처럼 고정된 가치관은 사회에 녹아들어 국민을 빠르게 성장시켰지만 대한민국은 따라가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는 ‘부당함’에서 알 수 있다. 부당한 일이 많아진다는 것은 국민이 성장한 만큼 나라가 지원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최근에 급격하게 늘어난 국민청원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지금은 국민들의 희생과 노력만으로 나라가 발전하기에는 한계가 왔다. 모든 지표가 말해주듯이 많은 부분에서 정체되고 있다. 여기서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빠르게 성장하는 국민을 지원할 수 있는 빠른 대한민국이 필요하다.

기자는 교육받을 때 어느 사건에 있는 이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배운다. 단순하게 하나의사건이 발생했다고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보면 안 된다는 말이다. 그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이해관계가 발생했고 이 사건으로 인해 누가 손해 보고 누가 이득을 보는가 등 묶여 있는 온갖 실타래를 보고 숨겨져 있는 사실을 알 수 있어야 한다.

그 교육에서 충격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근로장학금’이란 명칭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부는 학교에서 일해서 받는 노동의 대가를 근로장학생에게 주는 근로장학금으로 만들어버렸다.

장학금은 사전에 ‘경제적으로 어렵거나 학업이나 연구 성과가 뛰어난 사람에게 배움을 장려하는 목적으로 지급되는 돈’으로 적혀 있다.

근로장학생이란 명칭은 그래서 틀렸다. 노동이 있다면 그것은 장학금이라 불릴 수 없다. 근로장학금이라는 명칭은 그냥 급여, 월급 정도로만 말해야 한다. 그것은 노동의 대가를 장학금으로 포장해 놓은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학생들은 그 명칭으로 인해 노동의 대가를 학교에서 자신을 위해 지원해준다고 착각할 수도 있다. 근로장학금을 주는 것은 그저 학교가 필요로 인해 적은 급여로 학생들을 고용하여 일을 시키는 것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작은 사회인 학교조차도 이러한데 얼마나 많은 상황에서 진실이 가려진 채로 결정권자들의 논리에 의해 의도를 숨긴 채 흘러가고 있을까.

이미 공학 기술은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 다만 발전에 방해되는 것은 각종 규제 정도일 것이다. 숨겨진 의도가 없이 정말 기술의 발전을 위해서 많은 규제는 완화되어야 하고 그대로 기업의 이익과 직원들에게 보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코로나19가 발생한 최근과 같은 상황에서 더욱 필요한 것들이다.

대한민국은 분명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국민 의식도 높아져 코로나19와 같은 위기도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다. 그동안 국민들의 희생으로 이만한 발전이 이뤄졌다면 이제는 그 희생이 헛되지 않게 국민을 지원해 줄 수 있는 다양한 방안들이 나와야 할 것이다.

국민에 대한 지원은 단순히 복지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안전한 대한민국이 되는 다양한 정책이 수반되어야 한다. 코로나19는 사회 전반적으로 국민의 불안함을 야기하고 있지만 이를 계기로 국민의 안전을 침해할 수 있는 요소를 사전에 제거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

이는 코로나19가 어느 정도 안정이 되었을 때 나라와 모든 국민이 함께 더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다.

 

 

 

 

 

 

글_정이도
(주)드림기획 대표이사
공학전문기자/작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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