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CEO, 실패 딛고 재도약할 수 있는 용기 필요
여성 CEO, 실패 딛고 재도약할 수 있는 용기 필요
  • 김하늬 기자
  • 승인 2019.06.18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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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저널 김하늬 기자] 전 세계적으로 여성 CEO가 늘고 있지만 IT 분야에서는 아직까지 현저히 낮은 비율을 보이고 있다. 국내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지난해 국내 IT 분야 여성 CEO 조사결과 ICT 분야에서는 9.5%, SW 부문에서 8%로 나타난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테르텐을 이끌어온 이영 대표이사(사진)는 오랜 시간 기업의 수장으로서 여성벤처의 어려움을 직접 몸으로 겪어왔다. 때문에 그는 여성 후배들의 창업을 권장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걱정스러운 입장이다.

여성 기업인들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잇따르고 있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창출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이 대표의 생각이다.

그는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여성 CEO들이 활동하는 데 보이지 않는 ‘유리천장’이 존재한다. 꾸준한 노력으로 이 장벽을 허물고 후배 여성기업인들이 창업을 통해 사업을 이끌어나가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여성벤처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한 이 대표는 기술 벤처창업 1세대다. 보안업계 1호 여성 CEO인 그는 광운대학교 수학과 졸업 후 카이스트 대학원에서 암호학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가 대학교에 진학했을 때만 해도, 국내에서 암호학은 신학문에 속했다. 암호를 공부하는 학생이 30명도 채 되지 않았던 것이다. 교수님의 제안으로 암호를 전공하며 카이스트 대학원에 입학한 그는 석사와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암호학에 더욱 매력을 느꼈다.

“당시 낯설었던 암호학을 공부하겠다고 말하니 학교에서 당황하는 입장이었다. 독학이라도 하겠다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며 “다행히도 암호학의 기초 학문 중 하나인 정수론을 공부하셨던 교수님께 배우며, 보안 1세대로서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렇게 이 대표는 지난 2000년 대학 재학 중 카이스트 선후배 4명과 보안업체 테르텐을 창업했다. 하지만 창업의 현실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당시 테르텐이 내놓은 서비스는 천리안 등의 PC통신을 쓰던 대중들이 수용하기에는 기술력이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

이 대표는 “실리콘밸리에서 나오는 최신 정보와 논문, 신문을 통해 접한 내용과 시대의 흐름을 적절하게 읽지 못했던 것 같다”며 “다양한 경험 부족으로 그 부분을 고려하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라고 회상했다.

이후 이 대표는 해외 진출을 시도 했으나 해외에는 테르텐의 기술이 사용될만한 망이 깔려있지 않았고, 그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2006년을 가장 좌절했던 시기라고 꼽는 이 대표는 당시 개발자 엔지니어로서의 한계를 느꼈다고 전한다.

함께 창업했던 이들이 떠나고, 테르텐의 존폐 여부를 두고 고민하던 그는 한 번 더 도약을 다짐했다. 사업가로서 성장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이다. 여성 기업인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재도약을 실행에 옮겼다.

이 대표는 디지털저작권관리(DRM) 시장을 개척하며 사업 확대에 나섰다. 마침 한 연예인의 화보가 서비스 오픈 전에 해킹되는 사건이 발생했고, 이를 촉매재로 디지털콘텐츠가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던 당시 환경의 변화가 시작됐다. 이를 통해 시장이 활성화됨에 따라 테르텐은 싸이월드 등 유명 사이트의 관련 서비스를 담당하면서 전체 DRM의 약 80~90%를 수주했다.

테르텐은 현재 웹 브라우저 화면에 표현되는 기밀정보와 개인정보의 유출을 방지하는 웹 브라우저 화면 보안 솔루션 ‘웹큐브(WebCube)’와 모바일 앱으로 유출될 수 있는 데이터를 보안하는 ‘T-MCM’, 기업 협력사 간 핵심정보를 독립적인 영역에서 보안하는 PC용 협력사 정보 유출 방지 솔루션 ‘T-DataWall’ 등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보안서비스는 행정안전부의 민원24를 포함해 여러 공공기관과 SK텔레콤 등 대기업, 카드사와 생명보험사, 손해보험사 등 금융사, 보건복지부 산하 병원 등 다양한 곳에 적용되고 있다.

이 대표는 현재 여성벤처가 데스밸리를 넘길 수 있는데 집중하고 있다. 효율성이 떨어졌던 자신의 과거를 되짚어보며, 후배들의 시간을 절약해주기 위한 지원에 앞장서고 있는 것. ‘와이얼라이언스’라는 펀딩 회사를 만들어, 청년 창업가들을 지원하고 있다.

이 대표는 “여성 후배들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선배 멘토를 만들라고 조언한다”며 “협회에서도 사업계획서, 개발에 필요한 공정, 특허 내는 법들에 대해 주기적으로 1대1 멘토링을 진행하고 있다. 자금문제로 성장 한계를 맞는 데스벨리의 첫 번째 고비가 3년 이내인데, 이를 수월하게 넘길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보다 많은 여성기업인들이 성공하려면 개인적인 성과 달성도 좋지만 생태계 전체 흐름을 보며 점프업 할 수 있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실패를 겪기도 하지만 쉽게 포기하는 것보다 한 번 더 도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내가 사업을 하면서 겪었던 다양한 어려움이 반복되지 않도록 앞으로도 후배들을 돕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아끼지 않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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