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건축물 위한 설계기준·제도마련 우선돼야
건강한 건축물 위한 설계기준·제도마련 우선돼야
  • 김하늬 기자
  • 승인 2022.04.1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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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학저널 김하늬 기자] 현재 탄소중립은 전 세계적인 의무로 인식되고 있다. 다양한 산업에서 탄소중립을 위한 방안 마련에 나서고 있으며, 건축 분야에서는 패시브건축을 하나의 방안으로 꼽고 있다.

패시브건축물은 건축물에 고효율, 에너지 절약설계기법을 도입해 최소한의 냉난방으로 적절한 실내온도를 유지할 수 있게 설계된 주택을 말한다. 외부에서 에너지를 끌어오거나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가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최대한 막는 방식이기 때문에 ‘수동적(Passive)’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현재까지 중대형 건물보다는 소규모건축에 적용돼 왔지만 범위를 점차 확장하고 있는 추세다.

현재 우리나라 건축물의 85%는 연면적 500제곱미터 이하의 소규모건축물에 속한다. 때문에 이 시장이 탄소제로를 언급할 수 있을 때, 진정한 탄소중립의 길로 접어들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간 국내 건축물 에너지 성능 향상을 위한 R&D, 정책은 대부분 중대형건물, 공동주택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이는 중대형건물이 파급효과가 크고 이끌어가기가 쉬운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500제곱미터 이하인 소규모건축물은 오랫동안 규제와 관리의 사각지대에서 방치된 대가로 품질확보가 더욱 어려워졌다. 막대한 에너지 손실에 더해서 저품질 자재, 시공불량 등 하자도 부지기수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2019년부터 한국패시브건축협회는 ‘소규모 건축물의 소비에너지 최적화를 위한 설계·시공기술 개발’ 연구를 진행해 왔다. 이 연구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바로 ‘설계기준’이다.

소규모 건축물 시장은 건축사가 허가에 필요한 도면만 그린 후 세부내용은 시공사에 맡겨버리는 경우가 많았고, 그로인해 하자가 생길 경우 비록 그 것이 설계하자라 할지라도 모두 시공사 책임이 되어 왔다.

이런 배경에는 무엇보다 국내 건축시장이 설계기준서가 부재한 상태에서 표준시방서를 중심으로 발달했다는 점도 한 몫 했다. 해외 여러 선진국에서는 설계사무소가 도면을 작성할 때 기준으로 삼는 설계기준이 있어 왔고, 이 기준을 바탕으로 시방서를 만들어 왔다. 그러나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건축사가 참고하는 것은 ‘건축법’과 ‘경험’일 뿐이다.

이에 협회는 ‘설계중심’의 건축으로 가기 위해 연구내의 소과제 중에서 설계기준서 제작에 가장 많은 연구비를 투입하고 있다.

한국패시브건축협회 최정만 회장(사진)은 “설계기준서에는 건축물이 갖춰야할 기본적인 사항을 담겨 있다. 사실상 지키지 않으면 하자가 발생하기 때문에 기능상으로는 법적기준 이상의 성격을 갖지만, 이 기준서의 법적 의무화는 지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제도 보다는 시장 중심의 자정 작용으로 통해 건축물의 품질을 확보하는 것이 목적이며, 이 것이 재료, 설계, 시공, 유지관리, 리모델링 등 전생애주기에 걸쳐 최소한의 지속가능한 품질을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 건전한 건축 시장에 저탄소을 입힌다면 이 것이 진정한 미래 세대를 위한 탄소제로 사회의 밑거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소규모건설업면허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며, 공사자격에 대한 규제 등 관련 제도가 미비해 피해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회장은 “소규모건축물 시장은 아직까지 불법면허대여, 위장취업, 폐업, 탈세 등의 문제를 안고 있으며, 이렇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소규모건설업면허 제도가 없기 때문”이라며 “즉 건설업 면허를 가진 종합건설회사는 소규모건축물 시장은 너무 작은 시장이라 기피를 하고 있기에, 정작 현장에서는 경험으로 건축을 배운 분들이 시공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제로에너지건축물을 소규모현장까지 확산시키려면 반드시 ‘소규모건설업면허’ 제도가 만들어져야 하며, 이를 통해 자격을 가진 자가 부담 없이 이 시장에 들어 올 수 있는 길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협회는 창립 이래로 ‘삶’을 중심에 둔 건강한 건축을 지향하고 있다고 한다. 패시브건축 기술은 ‘쾌적한 실내 환경’을 목표로 발전해 왔고, 이를 위한 기술 개발이 에너지 절감이라는 결과로 이어진 것뿐이라는 것이다.

최 회장은 “현재의 시장은 ‘어떤 건물이든 제로에너지면 돼’라는 생각으로, ‘단열재는 두껍게, 창문은 고효율, 태양광은 많이’라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으나 이 과정에서 ‘단열재를 어떻게 사용할 것이며, 창을 어떻게 넣을 것이며, 태양광을 어떻게 접목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즉 ‘많이’ 보다는 ‘어떻게’가 제로에너지건축의 지향점이어야 한다”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쾌적한 삶을 바탕으로 한 지속가능한 제로에너지건축물이 목표여야 한다”며 “건강한 건물이었으면 한다. 중의적인 의미로, 건물도 건강하지만 사는 사람도 건강해지는 건물을 위한 건전한 건축시장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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